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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하늘마음
[2019-09-19 03: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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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농촌은 고먕이 손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바쁜 농사철이다.
나 역시 완전 산속의 야콘밭에서 야콘을 심었다.
유기농 퇴비를 주고 골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고, 물을 주고, 야콘을 심었다.

지금 몇날 며칠 유기농 야콘과 유기농 고추를 심고 있다.
일단 내일까지 심고 하루 쉬기로 귀농 주동자와 약속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노동을 한 날은 몸을 좀 힘들어도 마음은 상쾌하다.

역시 난 노가다 체질인가 보다라고 귀농 주동자에게 말했더니 자기 덕이란다.
에효~~~~

이 시는 기대를 엄청했다.
요즘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는 것을 하고 있다보니 또 몇 가지 시를 필사할 수 있겠다 싶어 울진읍의 작은 서점에 주문을 해놓고 손꼽아 기다렸다.

이 책은 신철 화가의 화사한 그림이 눈부시게 중간중간 박혀 있어 고명과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읍까지 타이어에 고무탄내 나도록 달려 갔다.

책을 문질문질...
그건 너무 좋다는 표현이다.
첫장을 넘기니 이런 표현이 나온다.

"시를 읽는 일로 생을 통과하고 있는 삶이 시인이다."

"시를 쓰지 않지만 시를 읽는 일로 생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훨씬 시이니에 가깝다. 그는 세상의 모든 말과 우주의 예사롲지 않은 기미를 날카롭게 알아챈다."(본문 중에서)

​맞는 말같다.
시를 쓴다고 시인이 아니라 그런 사람이 더 시인이 가까운 것...


"이마" (신미나)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본문 22쪽)

​장판에 손톱으로 누르면 쏙 들어가는 경험을 했던지라 이 시를 읽으며 씩 웃었다.
공감대 형성에 딱 맞아 떨어지는 시다.
그 손톱으로 누른 곳에 들어가 눕고 싶다는 시인....

사람들은 다락방이나 구석진 방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엄마 품속같고 어둔 그런 다락방같은 곳에 있으면 마음이 푹 놓인다.

"먹기러기" (손택수)

​달에 눈썹을 달아서
속눈썹을 달아서
가는 기러기떼
먹기러기떼
수묵으로 천리를
깜박인다
오르락내리락
찬 달빛
흘려보내고
흘려보내도
차는 달빛
수묵으로
속눈썹이 젖어서

​"허공" (이 덕규)

자라면서 기댈 곳이
허공밖에 없는 나무들은
믿는 구석이 오직 허공뿐인 나무들은
끝내 기운 쪽으로
쿵, 쓰러기고야 마는 나무들은
기억한다 일생
기대 살던 당신의 그 든든한 어깨를
당신이 떠날까봐
조바심으로 오그라들던 그 뭉툭한 발가락을

'식혜"(김명인)

삭은 혀끝이 거머쥘 감칠맛 어디 있겠냐고
어머니, 할머니, 할머니의 그 할머니
구황하려 매운 손끝으로 버무려 온 물가재미식해
한 젓가락 듬뿍 퍼 올리고 싶다
흔다디흔한 무가재미 큼직큼직 채 썰어
무며 조밥, 마늘, 고춧가루에 비벼 간 맞춘 뒤
오지에 담아 아랫목에 두면 며칠 새
들큰새콤 퀴퀴하게 삭아 있던 밥 식해,
왜 오묘함은 가슴과 사귀는 좁쌀별인지
밤새워 푸득거리는 눈발 한 채여도 안 서럽던!

​김명인 시인은 울진 출신이라는 것을 이 시집을 보고 알았다.
울진 후포고등학교 나와 고대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는 시인...
내가 울진으로 귀농해서인지 시집 속의 시인이 반가웠다.
그리고 이 물가재미 식해는 울진에 귀농해서 처음 먹어보았다.
처음 먹었을 때는 시큼하고 퀴퀴하고 그랬는데 먹을수록 그 깊은 맛을 알 것같다.
우리집 귀농 주동자는 먹걸리 안주로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다.

​"그늘에 묻다"(길상호)

달빛에 슬며시 깨어보니
귀뚜라미가 장판에 몰로 누우어 있다
저만치 따로 버려둔 뒷다리 하나,
아기 고양이 산문이 운문이 는
처음 저릴러놓은 죽음에 코를 대고
킁킁킁 계절의 비린내를 맡는 중이다
그들이 많은 집,
울기 좋은 그늘을 찾아 들어선 곳에서
귀뚜라미는 먼지와 뒤엉켜
더듬이에 남은 후회를 마저 끝냈을까
날개 현에 미처 꺼내지 못한 울음소리가
진물처럼 노랗게 배어나올 때
고양이들은 죽음이 그새 식상해졌는지
소리 없이 밥그릇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나는 식은 귀뚜라미를 주어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고는
그늘로 덧질해놓은 창을 닫았다.
성급히 들어오려다 창틀에 낀 바람은
다행히 부러진 관절이 없었다.(본문 87)

사실 소제목이 "가만히 외두고 싶고 베끼고 싶은 65편의 시"라고 되어 있어 요즘 필사를 자주 하는 나로서는 엄청 기대가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크다는 말이 실감난다.
조금 아쉽다.
필사를 하는 시는 필사할수록 진액이 빠져나오는 삶의 시일 때 뿌듯함이 있는데....

​그렇다고 이곳에 실린 시가 별볼일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양한 감각과 감동을 주는 시들이 많지만 두고 두고 싶어할 정도는 아니라 많이 아쉬웠다.
그러나 이것도 개인적인 느낌인지라...

이제 밤도 깊었으니 자야겠다.
내일도 깊은 산중의 산에서 야콘을 심어야 한다.

(이 글은 봄에 쓴 글인데 이제야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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